루키우스의 기록
아란제브 Aranzeb 12명의 영웅들
2014-02-12 09:04 조회 17619아란제브 Aranzeb
고결한 은둔자, 가장 위대한 마법사, 제사 언덕의 맹약자.
아란제브는 아르(Ar) 씨족 출신이었다. 그가 태어난 에노아는 다른 종족들이 낙원으로 여기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아버지 이렌마르는 마법사였으나 위대한 마법사가 되려하기보다 씨족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내는 삶에 만족했다.
에노아는 왕국이었지만 그 안에 수많은 씨족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씨족 안에서 중요한 직업을 모두 배출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는데 마법사를 많이 배출한 씨족일수록 발언권이 커졌다. 마법사는 원하기만 하면 원로원의 의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씨족 간 이해다툼이 커지고 있어 마법사의 아이들은 예의 주시를 받게 되었다. 아란제브도 마찬가지였다.
이렌마르는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마법사로 키워지고, 원로원에 나가 자기 뜻과 관계없이 씨족만을 대변해야 하는 상황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는 일부러 아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자유롭게 놀도록 했다.
어린 아란제브는 혼자 쏘다녔다. 숲뿐 아니라 산이며 바다, 호수, 동굴까지 발이 닿는 대로 다니다가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서 기원을 올리고 잠을 잤다. 깨어나면 모두 똑같아 보이던 나무나 바위 사이에서 길이 신비롭게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너무 어려서 그런 힘이 일종의 마법임을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아란제브가 엘프들조차 거의 가지 않는 어둑한 숲에서 또다시 길을 잃고 잠이 들었을 때 한 소녀가 나무 사이에서 나타났다. 소녀는 낙엽더미 위에서 잠이 든 아란제브를 한참이나 홀린 듯 바라보다가 다가가 그의 발을 건드렸다.
그러자 아란제브의 꿈속에 소녀가 나타났다. 그와 소녀는 손을 잡고 숲을 헤매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동굴 앞까지 갔는데 동굴에서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나왔다.
외모가 노인인 엘프는 드물어서 그는 노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노인이 다가와 손을 잡더니 ‘네가 나를 위해 달려오겠지만 나는 떠난 뒤일 것이다. 그때 나를 위해 지팡이를 들어다오’라고 말했다.
아란제브는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늘 그렇듯 길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그 길로 나아갔다.
익숙한 풍경이 이어진 끝에 그는 꿈에 본 동굴에 도달했다. 그가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마치 꿈에서처럼 동굴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인이 아니고 청년이었다. 그리고 꿈에서처럼 모든 것을 아는 태도가 아니라 의아한 얼굴로 ‘어떻게 여길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아란제브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뒤죽박죽 설명하자 청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동굴 안쪽을 향해 ‘니네르!’하고 불렀다. 그러자 꿈에 본 소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가 네 꿈에 나온 소녀인가?”
아란제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니네르를 보며 ‘꿈의 힘을 사용했느냐?’라고 물었다. 니네르가 쭈뼛쭈뼛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엄한 얼굴로 ‘모르는 사람에게 마법을 쓰다니!’하고 꾸짖고는 아란제브를 돌아보며 사과했다.
아란제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일이 신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요. 꿈에서는 아저씨가 노인 모습이었고요, 저한테 이상한 말을 했어요. 그것도 니네르가 불어넣은 이야기인가요?”
아란제브가 꿈에서 들은 말을 알려주자 청년은 심각하게 듣고 있더니 그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엘프가 들은 말을 되풀이할 때는 암기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청년이 말했다.
“얘야. 나는 에르(Er) 씨족의 알렉산데르라고 한다. 니네르는 내 조카딸이지. 그런데 네가 꿈에서 들은 얘기는 니네르가 불어넣은 것이 아니란다. 니네르는 무의식을 건드리는 힘을 가진 아이다. 그러니 꿈을 꾸게 한 것은 니네르가 맞지만 세세한 내용은 네 무의식, 그리고 예지가 결정하지. 다시 말해 꿈속의 말은 예언인 셈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 뜻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노인이 될 때까지 너와 내가 어떻게든 인연이 있으리라는 것만은 알겠다.”
알렉산데르는 아란제브에게 은밀히 찾아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마법을 가르쳤다. 청년처럼 보여도 알렉산데르는 수백 년 전부터 에노아 제일의 마법사였다. 그가 떠나자 에르 씨족은 원로원에서 크게 불리해졌다고 했다.
아란제브는 그런 사정을 모른 채 알렉산데르의 동굴을 드나들며 점차 마법에 눈을 떴고 니네르와도 남매처럼 지냈다. 부모를 잃고 삼촌과 숲에서만 지내 온 니네르는 처음부터 아란제브를 좋아했고, 아란제브도 곧 사랑에 빠졌다.
둘이 결혼하겠다고 하자 알렉산데르는 당황했다. 둘은 고작 스무 살 남짓했는데 엘프에게 스무 살은 어린이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어린이일지라도 육체는 이미 성숙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렉산데르는 아란제브를 가까이 두고 싶었다.
마침내 알렉산데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렌마르를 찾아갔다. 오랫동안 행방을 감췄던 알렉산데르의 출현에 이렌마르는 크게 놀랐다. 찾아온 사정을 듣고는 더 놀랐다.
아들이 마법에 재능을 드러낸 이상 결혼상대는 씨족 내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렌마르는 그런 짓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렌마르는 알렉산데르와 이야기한 끝에 아란제브의 마법 재능을 숨기기로 하고 두 아이를 결혼시켰다.
그것은 기이한 결혼이었다. 아란제브와 니네르는 에노아 전체에서 가장 어린 부부였다. 둘이 집을 짓자 다른 엘프들은 소꿉장난 하는 아이들을 보듯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실제로 둘은 집에서 지내기보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장난치거나 갈대꽃으로 서로를 간질이며 깔깔 웃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아이도 생기지 않았다. 어머니 아리벨은 이웃들에게 ‘애가 애를 낳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났다. 수십 년 뒤 백 살도 안 된 두 아이 사이에서 딸 아라니느가 태어났다. 셋 다 아이로만 이뤄진 괴상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사랑만은 어느 가족 못지않았다. 그 즈음 제자를 들이기 시작한 알렉산데르는 그들 부부를 수제자로 삼았다. 그제야 아란제브가 마법사임이 밝혀져 니네르와 결혼한 것이 문제되자 둘은 각자의 씨족에서 나와 그들 둘과 아라니느만이 속한 아라니 씨족을 만들었다.
그 일은 큰 물의를 일으켰으나 어리고 대담했던 그들은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고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셋의 집이 곧 낙원이었고 세 사람 안에 세상의 모든 평화가 있었다.
그 후 백 년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셋은 또래 같은 모습으로 숲속을 돌아다니며 길 찾기를 했다. 어려서 아란제브가 찾아냈던 길은 보이지 않는 마력이 흐르는 샛강이었는데 숲속에 특히 많았다.
아라니느가 길을 찾아내면 아란제브는 그걸 이용해 마법을 증폭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성년이 된 아란제브는 예전처럼 천진하게 웃지는 않았으나 침착하고 속 깊은 사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인도 아래 아라니느의 마법도 신비롭게 자랐다.
그 즈음 알렉산데르가 델피나드로 떠나며 함께 가자고 했지만 부부와 어린 딸은 에노아의 숲을 너무 사랑하여 거절했다.
아란제브가 마법사로서 두각을 나타낼수록 아르 씨족은 그의 존재를 아까워했고 에르 씨족에게 적대감을 품었다. 다툼이 잦아지자 타 씨족이 중재를 해서 둘은 양 씨족의 일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한동안은 그대로 괜찮아질 듯했으나 이번에는 니네르를 아르 씨족에게 빼앗겼다고 느낀 에르 씨족의 몇몇 젊은이들이 아란제브를 노렸다가 오히려 두 명이나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록 자신의 마법이 너무 강해 벌어진 일이었으나 아란제브는 크게 자책하며 더 이상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는 끝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수는 봄 폭풍우처럼 찾아왔다. 에르 씨족의 무장한 젊은이들이 숲에서 홀로 길 찾기를 하던 아라니느를 납치했다.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보니 아라니느는 이미 한 사내와 강제로 결혼한 상태였다. 한 명을 빼앗겼으나 한 명을 되 빼앗아왔다며 그들은 의기양양했다.
아란제브가 맹세를 깨고 마법을 써서 딸을 구해가자 남편이 된 자는 재판에 호소했다. 왕가와 핏줄이 닿는 명문가였기에 사태는 왜곡되어 아란제브는 결혼한 딸을 빼앗아가 남편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고발을 당했다.
어린 아라니느가 어떻게 결혼에 동의했겠느냐는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란제브 본인이 바로 그런 나이에 결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불리해져 오히려 남편에게 돌려보내질 상황이 되자 어느 새벽, 아라니느는 목을 찔러 자살했다. 수없이 증언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란제브와 니네르는 망연자실하여 넋을 놓았다. 재판은 없던 일이 되었으나 이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일로 니네르는 에르 씨족을 완전히 떠났다.
둘은 오랫동안 혼령을 기리는 움막을 짓고 숲에서 살며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서로가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시간이었다.
다시 백 년이 흘러갔다. 아란제브와 니네르는 둘뿐인 아라니 씨족을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엘프들이 그 긴 생애에 걸쳐 두세 명의 아이밖에 낳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으나 아란제브와 니네르의 상심은 깊었다.
그들 부부를 안타깝게 여긴 아르 씨족의 친척이 딸을 낳고는 대부모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둘은 기쁘게 받아들여서 대녀의 이름은 아란제비아가 되었다. 둘은 아란제비아를 딸처럼 사랑하며 아라니느의 빈자리를 메워보고자 애썼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라니느를 잃은 후로 니네르가 하루하루 조금씩 이상해져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란제브뿐이었다.
평소에는 멀쩡하고 침착해 보였지만 밤에 벌떡 일어나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쓰다듬거나, 자기 목을 조르다가 정신을 잃거나, 곧 아이를 낳을 거라며 아라니느의 옛 옷가지를 꺼내 하나하나 늘어놓거나 그런 일들이 드문드문 계속되었다. 네가 딸을 빼앗아갔다며 아란제브의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란제브는 니네르가 진정될 때까지 꼭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주 긴 백 년이었다. 니네르는 점차 혼자 숲을 방황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란제브가 뒤를 따랐지만 니네르는 어떤 날은 웃으면서, 어떤 날은 울면서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산책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기 때문에 아란제브는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는 이후 죽을 때까지 그 결정을 후회했다.
어느 날, 넋을 놓고 숲을 걷던 니네르는 독사를 밟았다. 독사에게 물리고도 그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아란제브가 달려왔을 때 니네르는 검게 변한 발은 아랑곳없이 무언가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지난 해 폭풍으로 부러져 노란 이끼가 낀 노간주나무 둥치였다. 이끼 색은 마치 어린 엘프들의 금발머리 같았다.
이미 혼수상태였던 니네르는 아란제브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눈물도, 호소도, 마지막 인사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나무둥치를 끌어안은 채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러했다. ‘사랑스러운 아라니느. 아, 천진한 내 아기. 엄마에게 오렴.’
그날 이후로 아란제브는 흡사 산 사람이 아닌 듯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니네르가 걷던 길을 되풀이해 걷고 아라니느가 찾던 길을 찾아다녔다.
엘프들은 그가 깊은 슬픔으로 곧 죽고 말리라고 여겼으나 몇 달이 지나도 죽지 않자 숲의 요정들이 그를 지켜준다고도 했고, 죽은 니네르와 아라니느가 찾아와 보살핀다고도 했다.
이듬해 알렉산데르가 소식을 전해 듣고 에노아로 돌아올 때까지도 아란제브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알렉산데르는 그를 억지로 델피나드로 데려갔다.
아란제브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니네르가 떠난 후로 세 번째의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알렉산데르는 그가 평온을 되찾은 순간을 분명히 기억했다. 그날도 근교의 숲에서 하염없이 길 찾기를 하던 그를 붙들어 세운 알렉산데르에게 문득 이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제가 죽으면 아라니 씨족도 사라지겠죠. 그러니 전 영원히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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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후라이드
@키프로사
52레벨
흑마술사
엘프
복수는 폭풍우처럼 찾아왔따.2014-02-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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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뫼
@진
48레벨
첩자
하리하란
진한테 죽었잖아....2014-02-13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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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위크
@진
50레벨
밤 노래꾼
하리하란
어어 스포금지합시다. 재미나게 읽고있는데;;;2014-02-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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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방랑자
@에안나
22레벨
길잡이
누이안
ㅋㅋㅋㅋ게임 시작 영상에 진한테 죽는 마법사가 아란제브인데요2014-09-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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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제아
@에버나이트
계승자 3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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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스포는 걱정마세요! 개발사가 해줍니다!2022-04-1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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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랑
@이프니르
55레벨
그림자 총사
엘프
선배님... 저는 지금 엘노로 팔려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많은 엘프 종족들의 모범이 되고, 역사의 흔적이 되어 후세인 우리에게 전해왔지만 저는 아닌 거 같네요. 제가 눈을 떴을 때는 마리아노플의 어느 허름한 엘프 빈민촌이었습니다.2024-03-04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