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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겨울 축제 주화]]로 교환해 얻을 수 있다. |
모두 [[겨울 축제 기념주화]]로 교환해 얻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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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olor:#22AE46}내용{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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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olor:#FF7702}1. 외톨이{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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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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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싫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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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머니인 로지아는 나를 볼 때마다 조용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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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는 화가 날 수록 조용해지는 성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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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침묵 속에서 싸늘한 눈빛으로 로지아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난폭하고 교활한 겨울의 신 네베의 차가운 숨결처럼, 로지아의 눈빛은 항상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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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는 내 친할머니이며, 나는 그녀의 유일한 손녀인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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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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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의 어머니이며 로지아의 며느리인 엘마는 나를 챙겨주는 것처럼 행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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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도 그녀가 날 정말 아껴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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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단지 로지아에게서 날 돌보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챙겨주는 척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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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마는 날 불편한 짐 덩어리로 생각한다. 내가 혹시라도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인 제임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내게 로지아처럼 행동하진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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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엘마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바느질 방으로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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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데기라도 돼서 밥값을 해야 로지아가 전나무 성에서 날 쫓아내지 않을 거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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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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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방의 벙어리 할멈은 로지아 만큼이나 난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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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손짓으로 명령을 내리는데, 조금만 못 알아들어도 거침없이 내 뺨을 후려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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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을 하면서 조금만 실수에도 거침 없이 손을 휘두른다. 처음 그녀에게 바느질을 배울 때,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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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의 침묵과 바느질 방의 벙어리 할멈의 침묵 속에서, 나는 눈빛과 숨소리의 상태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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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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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병대의 로우엘 대장은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기백을 지닌 노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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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나무 성에서 나를 싫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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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내게 살가운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는 로지아의 성격을 잘 아는 탓에 자신이 살가운 태도를 취할 수록 내가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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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엘 대장은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일절 내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눈빛과 숨소리는 내게 호의적인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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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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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어 가문의 충신인 가신 케언은 냉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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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로우엘 대장처럼 로지아의 성격을 생각해 내게 살가운 태도를 취하지 않는데, 로우엘 대장과 조금 다른 점은 그의 눈빛이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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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아버지인 레이븐의 광기를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로지아의 손녀인 내가 부엌데기 신세인 것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레이븐의 딸인 내가 부엌데기인 것에 안심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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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 케언이 보이는 모순적인 태도가 전나무 성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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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어느 누구도 내게 글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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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가 그냥 부엌데기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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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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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고 대충 머리를 묶은 후, 축사에 가서 달걀을 챙기고, 염소젖을 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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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염소젖을 가지고 부엌에 가면 아침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요리장과 시녀들의 일을 돋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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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장이 요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감자를 깎고 양파를 다듬는 등의 허드렛일이 내가 할 일이다. 식사가 완성되면 로지아는 항상 손자인 제임과 며느리인 엘마와 가신 대표인 케언과 창병대의 로우엘 대장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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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는 내게 할머니고, 엘마는 숙모이며, 제임은 사촌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끼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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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께 아침을 만들었던 요리장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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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나무 성의 묵시적인 규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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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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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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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에 눈덩이를 녹여서 만든 차가운 물에 접시를 담근 후, 바짝 마른 짚더미로 음식물 찌꺼기를 닦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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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바느질 방에 가서 창병들이 맡긴 찢어진 옷을 수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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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다시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 갔다가 바느질 방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부엌을 오간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땅거미가 질 무렾이 돼서야 내겐 자유가 주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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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나는 커다란 새장 속에 갇힌 새를 보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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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에서 나를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새장 속의 커다란 새뿐일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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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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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시간이 되면 제임이 조심스럽게 날 찾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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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난 제임을 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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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로지아와 함께 식사를 하지만, 자유로운 몸은 아니었다. 내가 아침을 준비한 시간에 제임은 로지엘 대장에게서 창술 훈련을 받아야 했고, 내가 바느질 방에 있을 무렵엔 델피나드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는 가정교사에게 쉴 틈 없는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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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질 무렵이 돼서야 자유가 주어지는 건 제임도 나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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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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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계속 피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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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새를 보기 위해 새장 앞에 가 있는 내 등 뒤에 나타난 제임이 던진 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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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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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같이 있는 걸 로지아와 엘마가 좋아하지 않아. 너도 알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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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그렇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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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의 말을 끊고 계속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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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너도 알아서 피해줘. 너랑 내가 같이 있는 게 발견되면 너는 그냥 조금 불편한 정도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란 말이야. 내가 로지아에게 뺨을 맞고 쫓겨나서 며칠 동안 마구간에서 지내는 꼴을 꼭 봐야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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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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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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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의 서쪽에 있는 허물어진 종탑에서 제임이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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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을 허물어진 종탑에서 보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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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이 될 때마다 서쪽 허물어진 종탑에 제임이 올라가 있는 게 신경 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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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게 저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고 그런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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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종탑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제임을 그냥 놔두기에는 내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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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제임을 찾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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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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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계속 보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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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종탑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제임이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가리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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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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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장 속에 갇힌 눈의 새를 보는데, 제임은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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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는 자유롭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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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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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새는 자유롭지 않아. 그냥 나는 게 좋아서 하늘을 나는 게 아니거든. 굶주림을 피하려고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나는 거야. 그리고 언제 어디서 사냥꾼이 활을 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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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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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나는 매를 바라보며 제임이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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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 새가 부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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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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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고 두려워도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잖아. 배부르고 안전해도 성 밖을 나가지 못한 채 갇혀 있는 것보단 그게 좋은 거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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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새를 가두고 있는 두껍고 단단한 새장만큼이나, 제임을 가두고 있는 이 전나무 성은 크고 단단했던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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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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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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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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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나도 책을 읽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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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olor:#FF7702}2. 내 이름은 키프로사{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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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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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선능 성이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이 피를 부리듯 짙은 낙조로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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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서쪽 종탑에서 제임과 나는 서로 손을 붙잡고 춤을 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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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신년행사에서 들었던 악사의 흥겨운 비파 연주는 없지만, 제임과 내 코끝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허밍이 비파 연주를 대신 한다. 서로의 발걸음과 서로의 호흡을 일치시킨 채 몸을 움직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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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 세상이 짙은 어둠에 휩싸일 때까지 우린 그렇게 함께 춤을 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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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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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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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하거나 무심한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만들었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풍부한 감정들이 가슴에서 솟아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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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배우는 게 끝나자 제임은 계속해서 자신이 배운 것들을 내게 가르쳐줬다. 비파 연주를 가르쳐주고,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노래를 알려주고, 춤도 가르쳐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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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무너진 종탑에서 허밍에 맞춰 춤을 추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존재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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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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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과 함께했던 즐겁고 은밀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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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마치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제임의 행방을 눈여겨보던 엘마가, 무너진 종탑에서 내가 제임과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본 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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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이 받던 후계자 교육에 변화가 찾아왔다. 수업이 많아져서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영지 경영을 실습한다는 이유로 병사들과 함께 전나무성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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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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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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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이 바빠지면서 난 다시 혼자가 됐지만, 전처럼 외롭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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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에게 글을 배운 덕분에 도서실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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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과 성 밖으로 보이는 넓은 들판과 산자락이 내가 살던 세상의 전부였는데, 도서실의 책 속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대륙의 중심이라는 델피나드의 찬란한 문화에서부터 대륙 남동쪽에 자리한 이방인의 나라 에페리움과, 대륙 서쪽에 있다는 드워프라는 난쟁이들의 나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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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내 마음은 전나무 성이 아닌, 성 밖의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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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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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키프로사'라는 이름의 뜻을 알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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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사는 '실편백나무'를 뜻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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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편백나무는 먼 옛날 왕자들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다는 고대의 왕국인 노스의 황혼의 숲에 많이 자랐다고 한다. 황혼의 숲에는 고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실편백나무에 영혼이 깃든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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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왜 내 이름을 '키프로사'로 지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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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딸에게 '영혼이 깃든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게 정상적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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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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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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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끝없이 반복되던 똑같은 하루가 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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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하얀 두건을 쓰고 전나무 성에 나타난 여자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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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흰 말을 끌고 왔는데, 파수병들을 바라보며 광인처럼 키득키득 웃더니 자신이 끌고 온 말의 엉덩이를 때려서 파수병 쪽으로 보냈다고 한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말을 멈춰 세우느라 파수병들이 소동을 벌이는 사이, 광인처럼 웃던 여자는 몸을 돌려 전나무 성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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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붙잡아서 멈추는 데 성공한 파수병 몇이 여자를 찾기 위해 성 밖으로 달려나갔지만, 어둠 속에 녹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자는 사라져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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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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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의 얼굴은 흡사 나뭇등걸 같았다. 화가 날수록 조용해지는 그녀가 근래 이렇게 격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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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없이 빙 둘러 놓인 의자들에 창병대 대장 둘과 부장 셋, 가신들, 집사와 며느리 엘마가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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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다 말고 달려 나왔을 테지만 정신이 번쩍 든 얼굴들이었다. 촛불 쉰 개로 환하게 밝힌 회의실 가운데에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아기의 허리띠에는 _‘오키드나, 레이븐의 딸’_이라는 글귀가 수놓아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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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의실 밖에서 열쇠 구멍을 통해 안을 훔쳐보았다. 평소에 회의실을 훔쳐보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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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을 때, 로지아의 뒤를 따르며 회의실로 들어가는 집사의 손에 들린 바구니 속의 아기를 본 것이 원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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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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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속의 아기를 본 순간,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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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심장의 박동이 내 것인지 아니면 아기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바구니 속의 아기와 나 사이에 강한 운명의 끌림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회의실에서 로지아는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발로 툭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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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깨어나 울기 시작하자 로지아는 우는 아기의 얼굴을 꼼꼼히 살피더니 사람들을 둘러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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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내다 버려라. 누구도 주워가게 해서는 안 된다. 숲에서 늑대 밥이 되게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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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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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엘은 무겁게 입을 다물고 엘마는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둘 다 항변하지는 못했다. 창병대의 거친 사내들도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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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자기 운명을 알기라도 하듯 점점 더 기를 쓰고 울었다. 명령을 실행해야 할 텐데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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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울음소리를 뚫고 로지아의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내다 버리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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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병 중 가장 젊은 오프레리 부장이 일어나 바구니를 안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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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뒤로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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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레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어둡게 가라앉은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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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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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레리 부장이 말을 끌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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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안장에는 어김없이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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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나가 멀어져가는 그림자를 엘마가 바라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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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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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딸이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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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마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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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은 네 아버지야.” 나는 재차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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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딸이 확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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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면 어쩌게? 다 끝났어. 늑대 밥으로 주라고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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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심장 박동이 마치 아기를 태운 채 성 밖으로 나간 오프레리가 탄 말의 뜀박질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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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딸... 내 동생...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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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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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가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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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에 가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가죽 보따리에 집어넣고, 횃불과 기름을 챙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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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어두컴컴한 병기고로 들어가 병사들이 사용하는 단검 두 자루를 가지고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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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날이 잘 벼려진 칼날에 달빛을 비춰보았다. 바구니 속에 있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치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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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레리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쫓아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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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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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나서려는데 파수병 로웰이 문을 가로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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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사, 지금 이 시각에 성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 행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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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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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참견 하지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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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내 거친 말투에 깜짝 놀라 잔뜩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서, 성 밖 전나무 숲에는 송아지만 한 늑대가 돌아다닌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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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검을 뽑아 들어 로웰의 겨눈 채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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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비켜! 한마디만 더 하면 해자 밑으로 처박아버리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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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결국 문에서 비켜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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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전나무 성을 뒤로한 채 짙은 어둠에 물든 전나무 숲을 향해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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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olor:#FF7702}3. 전나무 숲의 밤{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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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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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이 전나무 숲에 내려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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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사삭 사삭'하는 가늘게 뾰족한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가 숲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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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들고 있는 횃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나는 전나무 숲 바닥을 향해 불을 비추면서 오프레리의 말이 남긴 발자국을 찾아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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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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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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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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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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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어도 서너 번은 먹었을 법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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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씩 들리던 늑대 울음소리가 이제 내 주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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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몇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프레리가 탄 말의 발자국을 찾기 위해선 횃불이 필요한데, 이 횃불이 늑대 불러들이고 있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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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에 메고 있던 가죽 보따리에서 작은 향로를 꺼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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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의 지하 창고에 버려진 것처럼 방치되던 낡은 향로인데, 도서실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챙겨놨던 물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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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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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헝겊 조각을 작게 둘둘 말아서 콧구멍에 하나씩 넣어 완전히 막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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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 동안 틈틈이 전나무 성 창고에서 조금씩 빼돌려 모았던 누린내풀을 향로 안에 넣고 불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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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몹시 고약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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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을 막고 있는 마른 헝겊 조각은 포푸리를 말릴 때 바닥에 깔았던 헝겊을 잘라낸 것이었다. 포푸리의 달콤항 향이 짙게 배 있는 천인데도 불구하고, 그 향을 뚫고 누랜내풀의 역한 냄새가 코로 스며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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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으로 연기가 흩어지기 시작하자 늑대들이 두들겨 맞은 개처럼 깨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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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이 예민한 늑대는 이 고약한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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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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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린내풀을 향로 속에서 태워 냄새를 풍기는 거로 늑대를 쫓아낼 수 있다는 건, 도서실에서 읽은 대륙 기행기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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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새장 밖을 벗어나는 새처럼 전나무 성을 떠날 때 쓰려고 챙겨둔 것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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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누린내풀을 태워서 늑대를 쫓아냈지만, 내가 가지고 온 누린내풀의 양은 무한정이 아니다. 풀이 떨어지고, 몸에 뱄던 냄새가 바람에 흩어져 약해지면 다시 늑대의 표적이 될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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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누린내 풀이 떨어지기 전에 오프레리를 찾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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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들이 어서 빨리 움직이라고 나를 재촉하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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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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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자 차가운 냉기가 전나무 숲을 뒤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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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있던 횃불이 꺼져버렸다. 횃불에 감아둔 기름 먹은 천이 모두 타버린 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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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의 열기가 사라지자 몸이 차갑게 식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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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메어 지역에서 초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유월의 초입임에도 해가 떨어진 저녁 날씨는 늦가을처럼 싸늘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커다란 보름달에 의지해 오프레리의 말이 남긴 흔적을 더듬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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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먹구름이 달을 가린 순간, 숲은 완전 칠흑 같은 어둠에 파묻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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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린내풀을 태우고 있는 향로 안의 작은 불씨에 의지해 주변을 더듬어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다 떨어져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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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가진 건 병사들이 사용하는 단검 두 자루가 전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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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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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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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 속에서 오프레리의 말이 남긴 발자국은 이미 오래전에 놓쳐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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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로지 불확실한 감에 의지한 채 오프레리가 숲에 버렸을 바구니를 찾아 헤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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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 지금 내가 가는 길 끝에 바구니에 든 아기가 있을지, 아니면 절박함이 만든 착각에 대한 결과만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 심장이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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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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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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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대는 심장의 인도에 따라 달려간 곳의 어둠 저편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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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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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짙은 구름을 몰아냈는지 다시 달빛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달빛 속에서 아기 바구니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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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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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뱀 한 마리가 바구니 앞에 똬리를 튼 적을 경계하듯 고개를 치켜세운 모습으로 바구니 주변을 서성이는 커다란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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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커다란 뱀이 늑대로부터 바구니를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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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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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르르릉 거리는 늦은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늑대가 뱀을 노려본 상태로 천천히 발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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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꼿꼿하게 세운 뱀의 고개 역시 늑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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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빠른 걸음으로 뱀의 반대편 쪽으로 움직였다. 뱀의 등 뒤편은 우는 아기가 있는 바구니가 위치한 곳이었다. 당장이라도 늑대가 바구니 속의 아기를 물어 죽일 것만 같아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커다란 뱀이 똬리를 풀고 재빨리 바구니 뒤쪽으로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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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뱀의 민첩한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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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재빠른 움직임에 늑대도 놀랐는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채 바구니를 지키는 뱀을 노려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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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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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다시 빠른 움직임으로 뱀의 등 뒤 반대편 쪽으로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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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뱀 역시 빠르게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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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다시 빠르게 움직인 늑대가 오른발로 뱀의 목을 내리쳐 발로 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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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미처 빠른 늑대의 몸놀림에 반응하지 못한 채 기다란 목이 늑대의 발에 밟힌 상태가 되었다. 뱀이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 늑대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좀처럼 늑대의 앞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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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뱀이 늑대에게 물려 죽는 걸 지켜본다면, 바구니 속의 아기를 구하는 건 영영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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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서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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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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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늑대의 오른쪽 눈동자를 향해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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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단검 던지기 따위를 연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던지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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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던진 단검이 늑대의 왼쪽 눈에 정확하게 박혀 들어간 것이었다. 눈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놀란 늑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밑에 깔렸던 뱀이 늑대에게서 벗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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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늑대의 발에서 벗어난 순간 재빨리 늑대의 허벅다리를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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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에 왼쪽 눈을 잃고 뱀에게 허벅다리까지 물린 늑대는 분노에 휩싸여 몸부림을 치더니 자신을 물고 있는 뱀의 몸을 거칠게 물어뜯고 할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커다란 뱀이 거의 반 토막이 나듯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뱀은 늑대의 허벅다리를 끝까지 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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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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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독에 중독된 늑대는 결국 숨이 끊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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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죽자 뱀 역시 결국 죽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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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뱀의 혈투 속에서 아기가 들어 있던 바구니는 무사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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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몸부림처럼 늑대가 발로 바구니를 할퀸 탓에 부서진 채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부서진 바구니 옆에 강보에 담겨 있던 아기가 굴러 나와 있었는데, 다행히도 아기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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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달려가 아기를 안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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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울음을 토해내던 아기가 내 품에 들어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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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속에서 동생 오키드나와 내가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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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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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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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있다간 아기가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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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는 늑대의 사체를 도축해서 가죽을 벗겨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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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푹신한 늑대 가죽 안이라면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아기가 한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해보는 도축이었던 탓에 늑대의 피가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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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늑대 가죽을 벗겨낸 후, 대충 무두질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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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아기는 울지 않고 얌전히 나를 기다려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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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를 늑대 가죽 안에 넣은 후, 전나무 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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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olor:#FF7702}4. 오키드나{col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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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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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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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담긴 늑대 가죽을 질질 잡아끌면서 걷고 또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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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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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스르륵 물러나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아기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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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달린 탓에 왔던 길을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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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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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면 전나무 성이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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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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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걷고 또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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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른 탓에 허기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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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아기 역시도 나만큼 굶주린 상태였을 텐데도 아기는 울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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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면 안 되고, 울음을 터뜨려도 안 된다는 묘한 공감이 아기와 나 사이에서 유대감을 형성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전나무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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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의 사람들은 늑대 가죽을 질질 끌고 오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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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가죽 속에서 아기를 꺼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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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몸은 말라붙은 늑대의 피로 검붉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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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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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가 있는 성의 대전으로 가려는데 엘마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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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가죽에 담긴 아기를 바라보며 엘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양미간에 깊은 주름살이 잡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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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마가 저런 주름살을 만들 때는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할 때뿐이었다. 엘마가 잔소리를 토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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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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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마는 당황한 나머지 올빼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딸국질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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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마를 뒤로한 채 로지아가 있는 대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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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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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성의 대전은 을씨년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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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용 갑옷이 기다란 창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배치된 것을 제외하곤, 장식이란 게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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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을 둥글게 깎아서 만든 샹들리에가 높은 천장에 매달린 채 바람에 따라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샹들리에의 흔들림에 따라 촛불의 불 역시도 좌우로 춤을 추듯 흔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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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불빛과 깊은 적막 속에서 대전의 끝에 로지아가 서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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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 같은 흰 머리칼만큼이나 그녀의 눈동자는 싸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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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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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안아 든 채 대전에 들어온 내 뒤를 많은 사람이 쫓아온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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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침묵한 채 로지아의 눈치를 살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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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운명과 내 운명이 모두 로지아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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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손녀 취급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나와 아기를 전나무 성 밖으로 쫓아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은 태도를 지금까지 취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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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로지아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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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사냥했는데 새끼가 있었어요. 제가 키우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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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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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침묵이 대전에 깊게 내리깔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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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로지아의 입을 주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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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는 부릅뜬 눈으로 아기와 나를 번갈아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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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나는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늑대 가죽에 담긴 아기의 심장 박동도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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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아들이 낳은 두 손녀를 차갑게 바라보는 로지아의 심장 박동도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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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침묵 끝에 로지아가 입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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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저 아이는 이제부터 네 것이다. 모두 저 아이를 키프로사가 키우는 짐승으로 여겨라. 만일 짐승이 누군가를 문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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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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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가죽에 잠들었던 아기, 내 동생 오키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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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키드나를 키우기 위해 전나무 성에서 내 위치를 조금 바꿔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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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바느질 방과 부엌을 오가는 하인처럼 살아갔지만, 이제는 전나무 성의 성주인 로지아의 손녀로의 행동을 취해나갔다. 바느질 방의 구석에는 자신의 아기를 데려다 놓고 서로 돌봐주는 작은 쪽방이 있는데, 쪽방에서 아기를 돌보는 여자들에게 오키드나에게 젖을 주라고 명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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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명령에 여자들은 당황했지만, 강에도 싸인 채 말똥말똥 눈을 깜박이고 있는 오키드나를 바라보면서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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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부에게 아기의 기저귀와 옷을 세탁하게 만들고, 목수에게 아기 침대를 만들게 하였다. 아기가 젖을 뗀 뒤부턴 요리사에게 오키드나가 먹을 죽을 만들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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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차츰 나를 데이어 가문의 핏줄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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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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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늑대를 어떻게 잡은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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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던 것을 마법사인 데니가 물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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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목숨 걸고 아기를 지켜줬단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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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냐?" 데니가 혼자 넘겨짚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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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는 내 침묵이 긍정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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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비 책에서 배운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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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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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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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긴 책 사이에 마법 서가 있었나 보다. 도서실에는 아버지가 넘긴 책이 없었으니,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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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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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의 방을 청소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쇠를 본 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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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쇠가 아마도 성 동쪽 끝에 있는 자물쇠로 잠긴 방의 열쇠일 거로 생각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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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방이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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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아의 방에서 열쇠를 훔쳐낸 후, 늦은 새벽에 몰래 자물쇠를 열었다. 예상대로 자물쇠로 잠겨 있던 방은 아버지 레이븐이 사용했던 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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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탓에 먼지가 가득한 방이었는데, 벽 한쪽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양의 책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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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는 밤마다 몰래 아버지 레이븐이 사용했던 방에 찾아가 마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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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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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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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마법사의 자질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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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오키드나를 노렸던 늑대를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마법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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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세월 동안 나는 변화를 경험했지만, 오키드나는 그보다 더 큰 변화를 겪었다. 오키드나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리 봐도 태어난 지 이제 막 백일이 채 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오키드나는 3년 만에 여덟 살 쯤 되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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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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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드나는 혼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듯 중얼거리거나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기도 한다. 다. 사람들은 오키드나의 빠른 성장과 행동 때문에 저주받은 아이라는 말을 해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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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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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드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일반적인 모습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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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오키드나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도서실에서 읽었던 '육아일기'라는 책의 내용을 생각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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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의 아이에게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오키드나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일기를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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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드나의 두 손을 꼭 붙잡은 채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후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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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매일 일기를 쓰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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