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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 원정대 고기방패 1人 |
키프로사 해적 갑분봉 소속 판금 탱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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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록선장님의 노예 1호로써 하록컴퍼니 정직원이다. |
자는 ‘익덕(益德)’으로 《삼국지연의》에는 ‘익덕(翼德)’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격이 호쾌하여 생각한 바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기질의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유비(劉備)와 관우(關羽)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桃園結義)의 고사가 전해지지만 이는 창작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후한(後漢) 말 동란기에는 유비,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자 3명은 흩어지게 되는데 이때 장비는 망탕산에서 탈출하여 고성현에 세력을 구축하고 눌러앉게 된다. 이후 다시 유비와 관우를 만나 합류하여 유비와 함께 제갈량을 찾아간다. 조조(曹操)가 형주(荊州)를 공격해 오자 당양 장판교(長坂橋) 위에서 기병 20기를 데리고 "내가 장익덕이다"라고 일갈하여 추격해 오는 조조군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의 익주(益州) 공략 때는 주력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워 파서태수(巴西太守)가 되었다. 위(魏)나라의 명장 장합(張姸)이 장로(張魯)를 무찌르고 파서로 밀고 들어오자 역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
크라켄방패를 사서 강화확률 2배이벤때 8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수십번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이후 크방으로 영원히 까이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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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 방패를 다른사람이 사간후 그 방패는 바로 경이가 됫다고한다. |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거기장군(車騎將軍)·사례교위(司隷校尉)에 임명되었다. 장비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였고 지나치게 부하들에게 엄격하여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유비에게 훈계를 자주 듣기도 하였다. 유비가 형주에서 죽음을 당한 관우의 복수를 위하여 오(吳)나라 동정(東征)을 명했는데 종군할 준비를 하던 중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 자신의 부하였던 장달과 범강에게 암살되었다. 관우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일컬어진다. |
방패만 실패하는게 아니라 다른것들도 유물이상을 가지 못한다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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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닉네임은 '마그니'로 브리드폭스님과 비슷하여 마그니폭스란 별명을 가지고 있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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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탱커지만 판금이 너프되고나서 분노하고있다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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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가족챗으로 엌새님이 쓰라고 햇어요 장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