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고양이 페레의 저주
검은고양이 페레의 저주
제목 : 검은고양이 페레의 저주
분류 : 책
작자 : 유병희, 해밀
내용
서문
본 작품은 아키에이지의 유병희 님과 진 서버의 해밀님 님께서 공동으로 집필한 저서입니다.
#1
아침부터 옆집이 시끄럽다.
얼마 전 이사를 온 페레 인듯한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버렸다.
궁금한 마음에 새로운 이웃을 만나러 어제 짜둔 우유 몇 병을 선물로 들고 집을 나섰다.
'욕조?'
검은색 꼬리를 가진 페레 여성 하나가 낑낑대며 커다란 인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욕조를 집안으로 옮기고 있다.
"저기 도와드릴까요?"
#2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본 페레 여성은 앞발…. 아니…. 손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한번 훔치더니 혀로 털을 고르고는 그대로 손을 귀 뒤로 연신 쓸어 넘긴다.
매일 집안에서 잠만 자며 뒹굴고 있는 지난번 축제 때 받은 고양이가 크면 이런 모습일까?
털을 다 고른 후 내 손에 들린 우유병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우유를 한 개 집어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낚시 대회 우승 선물로 받은 거에요. 욕조만 필요했는데 인어까지 담아서 보내왔네요"
뒷말은 궁시렁대며 작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다.
#3
조그만 소리로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거워 보이는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물론 도울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대답이 너무 단호하게 나오자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다 마신 우유병을 돌려주는 그녀의 손가락 떨림이 파르르 전해졌다.
'낚시 대회에 우승했다고 인어까지 보내준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우유병을 돌려받고 문을 나가려는 찰나 욕조 속의 물이 참 방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지? 저 인어 살아있는 건가?'
「쾅!!」
#4
생각하고 돌아볼 틈이 없었다.
마치 울버린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문을 닫아버린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요!" 수상쩍은 낌새와 불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매번 날카롭게 신경질 내던 하리하냥, 누이냥, 엘냥 녀석들이 평소와 다르게 꼬리를 살랑인다.
축제기간에 끼니를 고사하고 열심히 하슬라를 들락거리면서 분양받아온 고양이 세 마리.
하리하냥.
누이냥.
엘냥.
#5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쪼그매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인지 쥐새끼를 키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녀석들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배가 고파서 이러나. 하핫. 이러지 마 간지러워 이 녀석들아" 유난히 오늘따라 나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는지 열심히 몸을 비벼댄다.
한참을 그렇게 고양이 세 마리와 뒤엉켜 보냈을까?
어느새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냐-오옹- 사각사각 냐아옹…. 사각사각" 침실 밖 거실에서 조그만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무언가 기분 나쁘게 긁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 이 밤중에 무슨 소리지….'
'끼-이익'
#6
거실문을 열자마자 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저녁까지만 해도 살을 비비며 나를 간지럽히던 하리하냥, 누이냥, 엘냥 녀석들이 입가에 피를 가득 묻힌 채로 무언가를 갈기갈기 찢어먹고 있는 게 아닌가.
거실의 어둠 사이로 살기를 띤 고양이 세 마리의 눈만 반짝거렸다. "허……. 억!! 너희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야!!! 그만둬!!"
소리를 지르며 가까이 가보니 갈기갈기 찢긴 그것은 저녁때 보았던 욕조 속 인어의 팔이었다.
#7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긴 인어의 팔과 피로 물든 거실 바닥.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고양이들. 그리고, 거실 밖 창문 틈 사이로 날 지켜보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
그것이 저주의 시작인 줄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