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일기 - 델피나드

나나의 일기 - 델피나드

(추가바람)

생산 정보

소모 노동력 : 25
필요 숙련 : 없음
제작대 : 인쇄기

원고 획득 정보

  • 증오 능력 각성 퀘스트 <증오를 일깨운 격투> 완료

내용

#1

전나무 성을 나와서 시작한 여행길은 순탄치 않았다.
로사 언니도 전나무 성을 나와서 오랜 시간 여행을 해본 것은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였다.
델피나드로 향하는 여행길에서 언니는 야영을 위해 모닥불을 피운 후, 나를 남겨둔 채 물을 뜨러 냇가에 갔다.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굶주린 늑대 무리가 모닥불 앞에 앉아 온기를 쬐고 있는 나를 포위했다. 늑대 무리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고약한 입 냄새가 느껴질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들이 감히!
나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다가오는 늑대의 눈을 응시했다.
늑대는 움찔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다가 결국,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웅크렸다.

#2

로사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타난 늑대 덕분에 눈 덮인 숲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를 등에 태운 채 한참을 달려야 했던 늑대는 숲이 끝나는 영역에서 달리던 것을 멈춘 채 몸을 웅크렸다.
나는 계속해서 편하게 늑대를 타고 여행하고 싶었지만, 로사 언니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 늑대에게도 가족이 있을 테니까 이만 돌려보내 주자."
어쩔 수 없이 늑대의 등에서 내렸다.
내가 돌아가라는 손짓을 하기 전까지 늑대는 숲이 끝나는 영역에서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로사 언니의 눈치를 살피다가 돌아가라고 손짓을 해줬다.
늑대는 쏜살같이 달려 숲 안으로 사라졌다.

#3

로사 언니와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여왕의 그림자가 느껴지고 있다!
새로운 여왕이 태어난 거 같다!
새로운 여왕은 우릴 가두고 있는 이 벽을 없앨 수 있다! 여왕을 찾아라!
내 안의 본능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몸을 이끌려 한다. 당장에라도 목소리와 본능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가도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로사 언니의 체온을 느끼며 제자리에 멈춰 선다.
로사 언니는 내가 왜 길을 걷다 갑자기 멈춰 선지 모른다.
"나나, 왜 그러니?"
나는 말 없이 로사 언니가 붙잡고 있는 손을 꼭 움켜잡았다.
이 손이 나를 영원히 붙잡아줬으면 좋겠다.

#4

로사 언니는 처음 보는 사람의 속마음은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로사 언니와 전나무 성을 나와 처음으로 머물게 된 낯선 도시의 외곽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언니는 순박한 얼굴을 한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우리처럼 어린 여자 둘이 여행을 하는 건 몹시 위험한 일이라며, 남이 아니라 손녀 같아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살가운 노파의 태도 때문인지 항상 사람을 주의 깊게 살피던 언니의 경계심이 잠시 느슨해졌다.
나는 노파가 손녀딸을 운운할 때부터 거짓말인 걸 알았지만, 피곤해서 그냥 요리가 나올 때까지 언니의 무릎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언니와 내 몸은 단단한 밧줄에 묶여 있었다.
노파는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팔면 금화 좀 만지겠다며 좋아했다.

#5

밧줄에 몸이 묶인 내 얼굴을 노파가 쭈글쭈글한 거친 손으로 만졌다.
불쾌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증오심을 담아서 외쳤다.
"그만, 멈춰!"
순간, 노파의 행동이 멈췄다. 노파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노파에게 명령했다. "밧줄을 풀어!"
노파는 우리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배가 고팠다.
"음식을 가져와."
따끈따끈한 스튜와 빵을 가져온 노파에게 말했다.
"이제, 죽어!"

#6

가슴에 단검이 꽂힌 채 죽은 노파의 시신을 바라보며 로사 언니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로사 언니의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는 게 느껴졌다.
로사 언니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내 손을 잡고 급히 노파가 운영하던 허름한 식당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마을 자경대로 보이는 청년 둘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자경대는 노파의 시체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칼을 뽑아 로사 언니를 향해 겨눴다.
자경대에게 명령했다.
"칼 치워! 그리고 서로 찔러!"
자경대 청년은 로사 언니를 겨누던 칼로 서로의 가슴을 찔렀다.

#7

로사 언니는 자경대 청년과 노파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내 손을 붙잡고 급히 도시를 빠져나왔다.
도시 밖 광야의 짙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정신없이 걷던 언니가 걸음을 멈춘 채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니?"
"나도 몰라."
"그럼, 언제부터 그런 걸 할 수 있었던 거니?"
"몰라, 오늘 처음 해본 거야." 언니는 내게 자신이 있을 때는 절대로 이 능력을 사용하지 말고, 없을 때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이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 작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로사 언니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을 붙잡아 주고 있는 언니를 위해서 난 이 약속을 꼭 지킬 거다.

#8

길고 긴 여정 끝에 델피나드에 도착했다.
풋내기 여행자에 불과해서 순박해 보이는 노파의 함정에도 쉽게 빠졌던 로사 언니는 어느새 노련한 여행자로 변해 있었다.
언니는 내 손을 붙잡은 채 화려한 델피나드의 골목 사이사이를 능숙하게 지나서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델피나드 도서관에 들어가려 했으나,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자 언니는 뒷구멍을 찾아봐야겠다면서, 협잡꾼처럼 생긴 자들을 살폈다.
델피나드까지 오면서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할 때마다 언니는 항상 뒷구멍을 이용하는 자들을 찾아서 활용했다.
언니는 잠시 잠시 고민하다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

주점에서 만난 염소수염을 한 사내가 자신이 식물원과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델피나드 도서관에 몰래 들어갔다가 나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염소수염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래서 난 언니에게 말해줬다.
"거짓말!"
로사 언니는 능숙하게 칼을 꺼내서 염소수염의 목을 겨눴다. 그때, 주점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쇠갈고리 마리우스가 승리했다!"
그 소리와 함께 주점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0

주점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테이블이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나는 재빨리 쓰러진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겼다.
로사 언니 앞에서 능력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럴 땐 그냥 숨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매우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고양이처럼 생긴 덩치 큰 사내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아수라장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바로 그 기분 나쁜 기운의 주인이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남자인데 이상하게도 가슴 속에서 적대감이 끓어 올랐다.
고양이처럼 생긴 사내가 기분 나쁜 남자를 진이라고 불렀다.

#11

진이라는 남자가 로사 언니와 운명적으로 엮인 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이라는 남자가 운명적으로 내 적이라는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로사 언니는 진이라는 남자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귓가에 메아리치는 소리가 처음 듣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운명의 대적자가 나타났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대적자가 우리 앞을 막을 것이다!
대적자는 파괴의 재앙이다!
진이란 남자와 귓가에 메아리치는 소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무언가가 내 입을 가로막는 걸 알지 못했다.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비릿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12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두컴컴한 낯선 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흙바닥 위에 깔린 지저분한 시트 위에서 정신을 잃은 채 계속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왼쪽에서 가느다란 빛이 새어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유리창을 가린 두꺼운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이었다.
커튼을 치우자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이 보였다. 바닥에 깔린 시트와 커튼을 잘게 찢어서 긴 밧줄을 만들어 허리에 묶은 후, 창문의 자물쇠가 걸린 갈고리에 매단 후 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릴 생각이었는데, 염소수염 사내가 낯선 남자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놈들에게 창밖을 가리키며 뛰어내리겠다는 의사를 표한 후, 창밖으로 쓰러지듯 천천히 몸을 던졌다.

#13

창밖으로 뛰어내린 순간 여기가 델피나드 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낯선 대도시에서 로사 언니를 찾겠다고 돌아다니면 오히려 길이 엇갈릴 수 있으니 그냥 언니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소수염 사내와 낯선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뛰어왔다.
꼬르륵. 배가 고프다. 난 염소수염에게 말했다.
"부엌으로 안내해."
염소수염 옆의 사내에게 말했다.
"요리해."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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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쫄복 @키리오스 | 55레벨 | 흑마법사 | 엘프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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