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일기 - 배덕자
나나의 일기 - 배덕자
(추가바람)
생산 정보
- 나나의 일기 - 배덕자 원고 x1
- 종이 x10
- 기억의 잉크 x1
- 가죽 x5
소모 노동력 : 25
필요 숙련 : 없음
제작대 : 인쇄기
원고 획득 정보
- 증오 능력 각성 퀘스트 <증오를 일깨운 낭만> 완료
내용
#1
로사 언니와 하루하루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평범하게 함께 식사하고, 손잡고 산책하러 나가고, 노래를 부르는 것마저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치 언니와 나 둘 중 하나가 금세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처럼.
최근 들어 에안나와 함께 그림자 매의 집에 자주 드나들고 있는 극작가 루키우스가 나를 보고 언니의 그림자 같다고 말했다. 그림자처럼 언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내겐 다르게 다가왔다.
그림자는 빛이 없으면 사라진다.
빛이 사라지는 날 나는 언니의 곁에 머물 수 없게 되는 걸까?
#2
죽음과 아름다움, 바다를 동시에 관장하는 다후타 여신의 축일이 왔다.
많은 사람이 다후타 제단의 신자들이 준비한 거리의 축제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후타는 바다 가까이 위치한 엘프 왕국인 트레파세스와 가까운 도시들에서만 봉양 되는 여신이었으나, 엘프들이 델피나드에서도 축제를 열었다. 로사 언니는 에아나드에서 공부하는 동기와 스승이 대부분 엘프였기 때문에 축제를 구경하러 거리에 나갔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서 다후타 여신의 축제를 구경하러 가기가 꺼려졌으나, 언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결국 나도 축제 행렬을 구경하러 나갔다.
진과 멜리사라, 루키우스와 에안나도 우리와 함께 다후타 여신의 축제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행진의 거리로 나갔다. 델피나드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이 전부 쏟아져 나온 것처럼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3
많은 인파 속에서 로사 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혹시라도 나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가 델피나드에서 본 엘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엘프가 몸에 달라붙는 축제 의상을 입고 거리 행렬에 나타났다.
아름다운 류트 선율에 맞춰 빙글빙글 돌면서 춤추며 행진하는 많은 엘프의 모습에 다들 넋이 나간 분위기였다. 수백 명의 엘프가 거의 동시에 같은 동작을 하면서 움직이는 대단위 군무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감탄이 절로 날 지경이었다.
춤추는 행렬이 지나간 후, 하얀 옷을 입은 많은 엘프가 성가를 부르며 행렬을 이어갔다.
성가 행렬이 끝나자 그 뒤로 마법사 복장을 한 여러 엘프가 마법으로 아름다운 불꽃을 만들며 그 뒤를 이어갔다.
#4
많은 엘프 마법사의 행렬 속에서 로사 언니는 용케도 아란제브를 발견했다.
우리는 원래 행렬만 구경한 후,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로사 언니가 아란제브를 발견한 것 때문에 결국 다후타 여신의 축제 행렬을 따라가게 되었다.
진은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루키우스는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만신전 앞 넓은 광장에 놓인 제단에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예식이 끝나자, 일행은 아란제브에게 찾아갔다.
아란제브의 옆에는 고목처럼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한 늙은 엘프가 있었다.
지금까지 델피나드와 에아나드에서 본 모든 엘프가 젊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난 엘프는 모두 젊은 모습일 거로 생각했다.
늙은 엘프의 정체가 몹시 궁금해졌다.
#5
로사 언니는 내가 늙은 엘프의 정체를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귓속말로 내게 늙은 엘프의 정체를 알려줬다.
"알렉산데르 스승님이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알렉산데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알렉산데르 역시도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알락산데르가 로사 언니 앞으로 다가오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주름진 알렉산데르의 손을 맞잡게 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다가오는 그의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크게 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내리친 탓인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6
알렉산데르의 손과 내 손이 닿은 건 아주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 낯설고 무서운 그림자가 떠올랐다.
엘프의 모습에 커다란 날개를 지닌 낯선 종족.
심연의 뱀들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인 이프나의 모습이었다.
왜 알렉산데르의 손을 내리치는 순간 이프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일까? 나는 알렉산데르가 다시 다가오지 못하게 노려봤다.
분노와 증오가 끓어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심연에 요동치던 기운의 일부가 발산되었다.
알렉산데르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미메탄의 마법사 레이븐의 힘이 바로 그것이었군..."
#7
다음날, 로사 언니는 알렉산데르 학파에서 파문당했다.
알렉산데르가 내게서 나차쉬의 힘을 감지했으며, 언니가 익히고 있었던 마법이 나차쉬의 힘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마법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파문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그림자 매의 집에 찾아왔던 아란제브는 잠시 고민하던 끝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키프로사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파문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스승님의 뜻에 따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당신이 배우는 마법은 제가 스승님을 대신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에 대한 언니의 열망이 나 때문에 꺼져버릴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란제브 덕분에 지켜졌다.
역시 진 보다는 아란제브가 로사 언니에게 더 잘 어울리는 남자 같다. 물론, 로사 언니를 남자에게 뺏길 생각은 없지만.
#8
로사 언니와 아란제브, 올로, 그리고 루키우스까지 그림자 매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부 나차쉬에 관한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차쉬를 숭배하는 종교가 만신전에서 금지하는 종교인 탓에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모두 힘을 모으자 하나둘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차쉬에 대한 연구는 극작가인 루키우스의 날카로운 지적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신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 연구를 하다보니 신에 관한 신화와 찬가 등 모든 게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이건 완전 모든 신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공유해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야."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었던 에안나가 푸념하듯 루키우스의 말을 받았다.
#9
루키우스는 자기 생각을 극으로 써서 '배덕자'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그림자 매의 집에 들르지 않다가 오랜만에 찾아와 우리에게 표를 나눠줬다.
자신이 연출한 연극인 배덕자의 입장권이었다.
로사 언니와 함께 루키우스가 연출한 '배덕자'를 봤으나 몹시 지루했다. 그래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보니 연극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관객들이 모두 일어서서 무대를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내고 있었다.
나만 재미없었던 걸까?
언니는 어떻게 봤나 궁금해서 쳐다보니, 로사 언니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이건 위험해... 만신전에서 가만히 있을 거 같지 않은데."
#10
로사 언니는 루키우스에게 자신의 걱정을 말했으나, 그는 자신만만했다.
"델피나드는 군중의 환호에 따라서 정책이 바뀌는 곳이니 걱정할 필요 없어!"
인기에 취한 루키우스를 바라보며 나는 불안함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그 커다란 변화조차도 모두 예정되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루키우스 퀸토, 변화를 이끄는 자.
그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부디 원치 않는 운명의 길에서 날 벗어나게 해주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