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의 일기
세바스의 일기
종족 퀘스트 13~16장에서 언급되는 인물 '세바스'가 작성한 자신의 일기.
종족 퀘스트 <정화의 불길 작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주거에 설치 된 이 책과 상호작용 해야한다.
원고 획득 정보
- 종족 퀘스트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의 보상
내용
#1
나는 고아다.
내게 가족 따윈 없다.
내게도 원래는 가족이란 게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엔 가족이란 존재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갓난아기였을 때, 루비 광산촌 마을 주민회관 앞에 버려진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갓난아기를 버리는 부모를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겐 가족이 없다.
나는 혼자다.
#2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광산에서 일한다.
나를 맡아 키우고 있는 광부 로젠보리는 입만 열면 내게 밥값을 하라며 호통쳤다.
자신이 갓난아기인 나를 키우느라 재산을 쏟아부었으니 그 값을 하라는 것이었다.
루비 광산촌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닌다. 전쟁놀이하며 들판을 뛰어다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산에 들어가 일을 하는 아이는 오직 나 하나뿐이다.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어두컴컴한 새벽에 몰래 루비 광산촌을 탈출했다.
혹시라도 로젠보리가 나를 잡으러 올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따라 계속 달려갔다.
도망 나올 때 가져온 보따리에 담긴 음식을 먹으면서 보름 동안 계속 발걸음을 옮긴 끝에 카어 노르드에 도착했다. 로젠보리가 가끔 술에 취했을 때 들려줬던 화려한 카어 노르드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지만, 무슨 일을 겪든 루비 광산촌에서보다는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4
나는 카어 노르드 환락가에서 밤의 요정과 무대의 흑조가 시키는 잔심부름 하면서 돈을 모았다.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는 딱히 없었다.
다만,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일단 돈을 많이 모은 후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는 마음이었다. 무려 일 년 동안 그렇게 모으고 모은 끝에 금화 다섯 개를 지니게 됐다.
나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늘 품에 지니고 다녔다.
힘든 일을 겪다가도 품 안에 있는 금화만 생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5
카어 노르드 뒷골목 불량배 올가드가 내 금화 주머니를 빼앗으려 했다.
극렬히 저항했으나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힘으론 이십 대 청년의 주먹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온몸이 피멍 투성이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채 결국 주머니를 빼앗겼다.
어떻게든 주머니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사람들은 그 모습을 구경만 했다. 온몸이 시퍼런 멍 자국으로 물들었다. 늑골이 부러졌는지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다.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눈두덩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멍하니 누워서 하늘을 바라만 봤다.
하늘은 한없이 푸르렀다.
#6
시체처럼 꼼작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누워만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지 못한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쳤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절감했다.
그때 고급스러운 마차 한 대가 달려오다가 길가에 쓰러진 나를 발견하곤 멈춰섰다. 마차의 마부는 내가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마차 안을 향해 외쳤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마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에 태우게나."
#7
마차의 주인은 이 세상 거의 모든 상인이 몸담은 거대 조직인 푸른 소금 상회의 우두머리인 리베크였다.
나는 리베크의 저택에서 치료를 받았다.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자 부러졌던 뼈가 다시 붙고 상처도 모두 아물었다.
상처가 완치되자 리베크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나를 교육하도록 명령했다. 리베크의 부하들은 내게 글자를 가르치고 기초상식을 교육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공격했던 불량배 같은 자에게 다시 당하지 않도록 격투술도 가르쳤다.
리베크는 내게 많은 것을 교육했지만,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복종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8
교육을 마친 날 리베크가 나를 불렀다.
"네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하나는 내가 우리 푸른 소금 상회에 일자리를 줄 테니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럼 넌 앞으로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다. 다른 하나는, 납치당한 내 아들을 되찾는 걸 돕는 것이다. 이 일은 네가 목숨을 걸어야만 하고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네게 이 일을 강요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리베크는 내 두 눈을 응시하면서 계속 말했다.
"네가 첫 번째를 선택한다고 해도 나는 널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널 치료하고 가르친 것에 대해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자유롭게 선택하거라."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두 번째를 선택할게요!"
#9
리베크는 나를 혼돈의 칼이라는 암살자 집단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운영하는 인신매매 집단에 자연스럽게 납치당하게 한 후, 놈들에게 암살자 교육을 받으면서 리베크의 납치당한 아들 세비아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혼돈의 칼에게 납치당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날, 리베크는 나와 함께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세바스다. 너는 이제 내 아들이다. 네가 세비아를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는 내 아들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우 낯선 단어를 말했다.
"아버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10
계획 했던 대로 나는 혼돈의 칼에게 납치당했다.
그들은 내게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인 후, 뼈의 땅에 있는 암살자 훈련소로 끌고 갔다.
리베크가 미리 준비해준 면역제를 먹은 탓에 나는 혼돈의 칼이 주는 약을 먹고도 기억을 잃지 않았다. 리베크는 아들 세비아의 손목에 푸른 별자리 모양의 작은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나는 암살자 훈련소에서 함께 훈련받는 아이들의 손목을 살폈지만, 특별한 문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11
암살자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후, 수습 암살자가 되어 여러 임무를 끝낸 뒤에야 나는 정식 암살자가 될 수 있었다.
정식 암살자는 감시를 피해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은밀하게 리베크를 찾아갔다.
팔 년 만에 다시 만난 리베크의 얼굴엔 깊은 주름살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내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리베크는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바스로구나!"
성장하면서 얼굴이 많이 변했는데도 아버지가 날 알아봤다는 사실에 기쁨이 샘솟았다.
#12
나는 아직까진 세비아를 찾아내지 못했단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가 실망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수고했다며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혼돈의 칼이 소속된 오스트 가신단에서 푸른 소금 상회에 첩자를 매우 많이 보냈으며, 아무래도 푸른 소금 상회 고위층 중 누군가가 첩자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세비아가 납치당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곧 혼돈의 칼에서 푸른 소금 상회에 새롭게 잠입시킬 대원을 뽑습니다. 제가 거기 뽑혀서 푸른 소금 상회에 있는 첩자를 모두 색출해내겠습니다."
"좋은 생각이구나!"
아버지께 칭찬을 받았다.
기쁘다.
#13
혼돈의 칼에서 푸른 소금 상회에 잠입시키는 첩자가 되는 임무를 맡았다.
혼돈의 칼이 나를 첩자로 뽑을 수밖에 없도록 일부러 상인으로 자주 변장해온 덕분이었다.
이 년 동안 혼돈의 칼에서 푸른 소금 상회로 파견된 첩자 행세를 하면서 푸른 소금 상회에 자리 잡은 첩자들의 신상을 알아냈다.
안타깝게도 고위급 인사로 위장해 있는 첩자를 밝혀내진 못했다. 세비아의 납치를 도운 고위급 첩자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
혼돈의 칼이 푸른 소금 상회에 계속해서 새로운 첩자를 보내는 것은, 첩자 중 누군가가 신의 방패에 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푸른 소금 상회의 일원으로 신의 방패에 지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면, 신의 방패에도 잠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첩자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생각이구나!"
아버지께 또 칭찬을 받았다.
행복하다.
#14
명령서를 지닌 혼돈의 칼 암살자가 푸른 소금 상회 숙소에 머무는 내게 찾아왔다.
명령서의 내용은 이 문서를 지닌 암살자가 리베크를 암살하게 도우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암살자에게 아버지가 호위와 함께 자주 이용하는 길을 알려줬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역으로 암살자를 물리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와 악수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엘피스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악수하는 엘피스의 손목에 자리한 푸른 별자리 모양의 문신이 나를 얼어붙게 하였다.
엘피스가 바로 내가 찾아왔던 아버지의 친아들 세비아였던 것이다.
#15
꿈을 꿨다.
친아들을 찾은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꿈이었다.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들을 찾아냈다는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암살자에게 금기시되는 술을 처음으로 마시게 됐다.
술이 괴로움을 잊게 해준다더니... 마시고 또 마시자 괴로움이 잊혀갔다.
그리고 시간 역시 잊혀 버렸다.
술기운 속에서 나 자신조차 잊은 채 잠들어 버렸다.
#16
지독한 숙취를 느끼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엘피스가 아버지를 암살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푸른 소금 상회 중앙회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엘피스는 암살에 실패했다.
오히려 그가 아버지를 지키던 호위에 죽임을 당한 것 같았다. 시신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호위의 말에 따르면 그가 살아남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인지, 아니면 세비아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인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17
아버지와 신의 방패 집행단 단장인 파트리아 트리스테와 함께 만나서 '정화의 불길 작전'이라는 첩자 소탕 작전을 수립했다.
내가 아버지를 납치하는 척해서, 푸른 소금 상회에 잠입한 오스트 가신단의 고위급 인사가 활동해 정체를 드러내도록 만드는 작전이었다.
혼돈의 칼에는 내가 아버지를 납치해서 신의 방패와 푸른 소금 상회를 이간질하겠다는 작전 계획서를 보냈다. 정화의 불길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괴로움을 잊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버지가 친아들인 세비아를 죽이게 하였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고 제때 아버지께 사실을 보고했다면,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18
정화의 불길 작전을 수행하면서 신의 방패에 잠입해 있던 오스트 가신단의 첩자를 만나게 됐다.
그는 내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혼돈의 칼이 지키고 있던 뼈의 땅 암살자 훈련소가 배신자의 손에 박살이 났다는 것이었다.
배신자의 정체를 듣는 순간 나는 또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배신자는 바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엘피스였다. 아버지의 친아들 세비아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참 질긴 생명이다.
#19
나는 세비아에게 편지를 보냈다.
태양이 북쪽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흐레 날, 갈대무리 땅 북쪽에 있는 은신처로 찾아오면 당신의 아버지를 찾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망설인 끝에 나는 또 다른 편지를 써서 혼돈의 칼에 보냈다.
태양이 북쪽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흐레 날, 갈대무리 땅 북쪽 은신처에 납치한 리베크를 놔두겠다는 내용이었다. 세비아가 아버지와 만난 상태에서 그들을 찾아온 혼돈의 칼의 공격에 세비아가 죽게 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
아버지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친아들인 세비아가 살해당한다면...
내가 버림받는 일은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20
활이 시위를 떠나버렸다.
혼돈의 칼에 편지를 보낸 걸 계속 후회하고 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민하다가 결국 이 일기를 열리지 않는 상자에 넣어 친구 보우만에게 맡기려 한다.
정화의 불길 작전을 실행한 후, 배신자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신의 방패 대원이 이 일기를 발견해서 비극을 막아주길 원하는 마음에서이다. 내가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는 혼돈의 칼 암살자를 막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믿지 못하겠다.
나는 아버지의 은혜도 모르는 사악한 놈이다.
혼돈의 칼이 은신처에 찾아온 순간, 나는 세비아가 아버지의 눈앞에서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
나란 놈은 그런 놈이니까...
부디, 누군가가 이런 나를 막아주길 빈다.